여름을 보내며 만든 블렌드 [대추나무]

Roas****
2022-08-13
관심받은 수 383

안녕하세요. 로스터입니다. 

커피 하나 소개합니다. "여름을 보내며" 만든 시즈널 블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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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팅실에는 창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로스터(기계) 오른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기계 뒤편이다. 기계 뒤편 창은 내가 로스팅을 할 때 시선이 잘 닿는 곳인데 그 창을 통해 나는 화단을 볼 수 있다. 


처음 이곳은 겨울이었다. 로스팅 하는 동안 창밖으로 시든 풀, 여위고 마른 나무를 날마다 보았다. 그들 위로 이따금 눈이 내렸다. 함박눈 내리는 창밖 풍경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봄이 되자 우리 화단에도 연둣빛이 들기 시작했다. 새순이 돋고 풀이 쑥 자라났다. 그렇게 삼월 되고 사월이 되었다. 나는 그 창을 내다보며 로스팅을 했다. "꿀벌과 나비(봄 블렌드)"도 만들며 놀기도 했다. 햇살이 따뜻하고 좋았다. 다른 불편한 일 쯤이야 생각나지 않을 만큼. 


다만 나무 몇 그루에 새순이 돋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좀 아쉬웠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까이 들여다봐도 뭔가 올라올 조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이 나무가 죽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5월이 되자 그 나무에 새끼 손톱 만한 순이 하나 둘 나기 시작하고, 5월 중순 지나니 나뭇잎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띄엄띄엄 제법 달렸다. 죽은 나무가 가까스로 회생한 듯한 장면이 꽤 좋았다. 그렇게 6월도 지나고, 7월 되면서 화단은 무성한 초록이 되었다. 거의 그 "회생한" 나무 덕이었다. 화단의 삼분의 일은 족히 그 나무들이었으므로. 


여름 로스터리는 몹시 더웠다. 햇볕이 바로 내리쬐는 곳에 화단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내가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지 않았단 사실을, 나는 우연히 "열매"를 발견하고서 알았다. 그것들이 마치 꽃처럼 무성히 달려 있는 장면은 놀랍고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웃음까지 났다.

'저게 대체 뭐야?' 

궁금했지만 바로 나가 확인하진 않았다. 로스팅 하는 중이기도 했고 이대로 좀더 보고 싶기도 했다. 모처럼 찾아온 재미로 일렁이는 마음을 그냥 두고 싶다 생각했다. 


며칠 후 나는 열매 가까이로 다가갔다. 가장 먼저는 코를 들이댔다. 풋사과 향이 나는 것 같았다. 열매를 만져보고 꾹 눌렀다. 그러다 아예 하나를 따서 반을 이로 베고는, 손으로 마저 갈라 보았다. 씨 모양을 보기 위해서였다. 양끝이 뽀족한 씨앗이 가운데 커다랗게 있었다. 역시, 그것은 대추였다. 내가 좋아하는 풋대추가 잔가지들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나는 여름을 "견디듯" 지낸다. 이런 내게 대추나무가 선물처럼 생겼다. 내가 이런 멋진 나무와 날마다 마주보며 지냈다니! 놀랍고 기뻤다. 이제 나한테는, 풋대추가 열려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계절이 "여름"이다. 로스터기 앞에 서면 창밖에 대추나무가 있다. 내가 이런 "굳고 정한" 나무와 날마다 마주보고 지낼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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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여름을 "견디듯" 지내는 이들을 생각하며 블렌드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대추나무"입니다. 케냐, 에티오피아 커피를 재료로 만들었어요. 미디엄 다크로 로스트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