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를 털면서 : 로스터기 앞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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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를 터는 장면을 사실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자꾸 읽어보면 알 것 같다.

할머님의 마음을. 그리고 젊은 '나'의 마음들을


참깨를 털면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출처]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참깨를 털어보기는 커녕 참깨 자루조차 온전히 구경해보지도 못한 나에게 참깨를 털어 볼 기회가 언제고 온다면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는 참깨를 털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언젠가 커피를 너무 많이 볶아서 내가 어떤 콩알을 어떻게 볶고 있는 건지 기억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른다면

신이나서 끝없이 돌아가는 로스터 드럼 앞에서 문득 '참깨'가 생각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