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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여행
이번에도 짐이 가볍다. 이제 아이들 짐 싸는 일은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뭐가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아이들도 대충 안다. 가방만 꺼내 두면 알아서 짐을 꾸린다. 자주 느끼는 일이지만, 어른만 잘하면 되는거다.
어딜 가나 나는 짐이 특별히 더 적은 사람이다. 예전에 브라질에 반 달 일정으로 다녀온 적 있는데 그때도 내겐 기내용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정말 짐이 이게 다냐, 많이들 신기해했다. 아무튼 나는 짐 없는 쪽이 좋다. 몸이 편하다. 없어서 불편한 거라면 잘 참으나, 짐 많아 힘겨운 건 피하고 싶다.
남도는 바다도 들판도 봄빛이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역시 시장이다. 어딜 가든 그 동네서 장을 보고싶다. 나는 오일장 운은 잘 없어 주로 상설 동네 시장과 하나로마트를 이용한다. 이번에는 완도 중앙시장에서 장을 봤다. 시장 입구에서 저쪽 끝이 한눈에 다 보이는 작은 시장이다. 시장에는 파는 물건 팔할이 파래, 감태, 말린 생선 그리고 풋마늘인 것 같다. 나는 파래도 사고 풋마늘도 사고, 쪽파와 도다리회도 샀다. 완도 어딜 가든 바다에는 김과 파래가 있고, 전복 양식장이 있다. 이곳 들판은 온통 푸릇한데 대부분 풋마늘이다. 내 눈에 풋마늘만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풋마늘은 그냥 된장에 찍어 먹기만 해도 반찬이 되고 데쳐서 무쳐먹어도 달큰하고 맛이 좋다. 쪽파는 움직거리기 귀찮을 때 볶기만 하면 라면보다 더 쉽게 맛있는 반찬이 된다.
해남 땅끝마을에 가봤다. 거의 20년 만인 것 같다. 선착장에는 노화도 들어가는 배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보길도 들어가고 싶은 눈빛으로 배를 바라보다 서로들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그자리에서 표를 샀다. 우리가 타고난 후 배는 바로 출발했다. 배는 노화 선착장에 닿았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 보길도로 들어갔다. 보길도는 예전보다 더 조용한 것 같다. 온화하고 아름다운 섬풍경은 여전했다. 오래 전에 보길도에서 일주일 지낸 적이 있다. 그때 산책했던 곳 중 몇은 더이상 관리되지 않아 벤치도 테이블도 망가지고 풀만 무성하게 바뀐 곳도 있다. 세월이라 하기엔 짧고 시간이라 하기엔 옛 기억이 아득히 멀다.
사진은, 보길도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사진이 좋아서 사진에 담아왔다.
보길도에 머무는 동안 이따금 숙소가 있던 숲에서 만난 새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자주 이야기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숲에 달려가 새가 아직 그 자리에 있을지 날아갔을지 확인했다. 보길도에서, 우리가 숲에 돌아갔을 때 새가 그 자리에 없기를, 없기를, 다같이 바랐다.
새는 "노랑턱멧새"다. 우리 가족이 새박사라 부르는 둘째가 그렇다고 하니 우리는 그런 줄 안다. 풀씨를 먹고 사는 새란다.
아주 이른 아침이었다. 아직 해 뜨기 전 어둑어둑한 가운데 어디선가 삑삑,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났다고 한다. 자신은 탐험가이므로 당연히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 봤다는데, 새 한마리가 죽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숨을 쉬더란다. 새 눈은 감겨 있었다. 숨 쉬는 것을 보자 아이들은 잔가지들을 주워와서 그 옆에 둥지를 만들고 풀씨를 가져다 놓고, 혹시 몰라 쌀도 한 줌 뒀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간 지나고, 아이들이 소리쳤다. "새가 눈을 떴어요!"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기절한 새가 깨어 난건지도 모르겠는데, 나가보니 정말 새가 눈을 떴다. 여전히 움직이지는 않는다. 숨만 쉰다.
해남에서, 우리가 다시 숲에 돌아왔을 때, 제발 새가 기운 차리고 날아갔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엔 그대로 거기 있으면 어떡하지 걱정도 되었다. 둘째는 그러면 병원에 데려가거나 어디어디에 신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노랑턱멧새는 봄이되면 북으로 갔다가 겨울에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거기에 쓰러져 있었는지 모르지만, 기운 잘 차려서 먼길 무사히 가기를.
우리가 남도에서 올라오고 난 후부터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오늘 아침에 들었다. 예사롭지 않은 봄비다. 거센 비바람 가고 잔잔한 봄비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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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여행
이번에도 짐이 가볍다. 이제 아이들 짐 싸는 일은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뭐가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아이들도 대충 안다. 가방만 꺼내 두면 알아서 짐을 꾸린다. 자주 느끼는 일이지만, 어른만 잘하면 되는거다.
어딜 가나 나는 짐이 특별히 더 적은 사람이다. 예전에 브라질에 반 달 일정으로 다녀온 적 있는데 그때도 내겐 기내용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정말 짐이 이게 다냐, 많이들 신기해했다. 아무튼 나는 짐 없는 쪽이 좋다. 몸이 편하다. 없어서 불편한 거라면 잘 참으나, 짐 많아 힘겨운 건 피하고 싶다.
남도는 바다도 들판도 봄빛이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역시 시장이다. 어딜 가든 그 동네서 장을 보고싶다. 나는 오일장 운은 잘 없어 주로 상설 동네 시장과 하나로마트를 이용한다. 이번에는 완도 중앙시장에서 장을 봤다. 시장 입구에서 저쪽 끝이 한눈에 다 보이는 작은 시장이다. 시장에는 파는 물건 팔할이 파래, 감태, 말린 생선 그리고 풋마늘인 것 같다. 나는 파래도 사고 풋마늘도 사고, 쪽파와 도다리회도 샀다. 완도 어딜 가든 바다에는 김과 파래가 있고, 전복 양식장이 있다. 이곳 들판은 온통 푸릇한데 대부분 풋마늘이다. 내 눈에 풋마늘만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풋마늘은 그냥 된장에 찍어 먹기만 해도 반찬이 되고 데쳐서 무쳐먹어도 달큰하고 맛이 좋다. 쪽파는 움직거리기 귀찮을 때 볶기만 하면 라면보다 더 쉽게 맛있는 반찬이 된다.
해남 땅끝마을에 가봤다. 거의 20년 만인 것 같다. 선착장에는 노화도 들어가는 배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보길도 들어가고 싶은 눈빛으로 배를 바라보다 서로들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그자리에서 표를 샀다. 우리가 타고난 후 배는 바로 출발했다. 배는 노화 선착장에 닿았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 보길도로 들어갔다. 보길도는 예전보다 더 조용한 것 같다. 온화하고 아름다운 섬풍경은 여전했다. 오래 전에 보길도에서 일주일 지낸 적이 있다. 그때 산책했던 곳 중 몇은 더이상 관리되지 않아 벤치도 테이블도 망가지고 풀만 무성하게 바뀐 곳도 있다. 세월이라 하기엔 짧고 시간이라 하기엔 옛 기억이 아득히 멀다.
사진은, 보길도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사진이 좋아서 사진에 담아왔다.
보길도에 머무는 동안 이따금 숙소가 있던 숲에서 만난 새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자주 이야기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숲에 달려가 새가 아직 그 자리에 있을지 날아갔을지 확인했다. 보길도에서, 우리가 숲에 돌아갔을 때 새가 그 자리에 없기를, 없기를, 다같이 바랐다.
새는 "노랑턱멧새"다. 우리 가족이 새박사라 부르는 둘째가 그렇다고 하니 우리는 그런 줄 안다. 풀씨를 먹고 사는 새란다.
아주 이른 아침이었다. 아직 해 뜨기 전 어둑어둑한 가운데 어디선가 삑삑,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났다고 한다. 자신은 탐험가이므로 당연히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 봤다는데, 새 한마리가 죽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숨을 쉬더란다. 새 눈은 감겨 있었다. 숨 쉬는 것을 보자 아이들은 잔가지들을 주워와서 그 옆에 둥지를 만들고 풀씨를 가져다 놓고, 혹시 몰라 쌀도 한 줌 뒀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간 지나고, 아이들이 소리쳤다. "새가 눈을 떴어요!"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기절한 새가 깨어 난건지도 모르겠는데, 나가보니 정말 새가 눈을 떴다. 여전히 움직이지는 않는다. 숨만 쉰다.
해남에서, 우리가 다시 숲에 돌아왔을 때, 제발 새가 기운 차리고 날아갔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엔 그대로 거기 있으면 어떡하지 걱정도 되었다. 둘째는 그러면 병원에 데려가거나 어디어디에 신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노랑턱멧새는 봄이되면 북으로 갔다가 겨울에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거기에 쓰러져 있었는지 모르지만, 기운 잘 차려서 먼길 무사히 가기를.
우리가 남도에서 올라오고 난 후부터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오늘 아침에 들었다. 예사롭지 않은 봄비다. 거센 비바람 가고 잔잔한 봄비가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