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이젠 당신 차례요!

Roaster Susan
2020-05-10

오늘은 날씨가 찌는 듯 덥다.

우리 가게는 작고 시설이 열악하다. 냉방시설을 따로 설치하지 않아 중앙에서 달력상 여름이 되어야만 에어컨을 가동한다. 그때까지는 하루종일 땀을 흘리며 일한다.
우리 가게는 원두를 파는 곳이다. 커피도 마실 수 있다. 그러나 좌석은 없다. 특별한 컨셉이 아니다. 좌석 놓을 곳이 없는 것일 뿐이다. 카페라기보다 원두를 판매하는 곳 한 켠에 간단히 바를 설치해서 음료를 판매하고 있는 정도랄까. 그래도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은 꽤 된다. 대부분 동네 사람이다. 바리스타는 우리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고 원두를 가져가는 손님들의 근황은 물론 커피 취향도 거의 파악하고 있다. 나는 아주 조금 안다. 나는 제조실을 나가는 법이 잘 없다. 사실 나가면 바리스타가 반기지 않는다. 좁아서 동선도 꼬이고 원래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닌데 나오면 여러모로 평소같지 않아 불편한 모양이다. 어차피 나도 나갈 여유가 없다. 너무 더워서 못참고 바람쐬러 나가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안에서 지낸다. 안에서만 지내지만 나는 손님들의 근황을 아예 모르지는 않는다. 인스타 덕이기도 하고 이야기꾼 바리스타의 덕이기도 하다.
바리스타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드립도 잘 친다. 정말 잘 친다. 그런 바리스타가 이야기꾼이 되어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재밌게 듣는다. 하루에 한 번은 빵터진다. 우리 손님들 중에는 촌철살인적(?) 드립 실력이 있는 분이 꽤 있다.
바리스타는 10분 남짓, 그러나 거의 매일 보는 손님들과 나누는 대화를 참 좋아한다. 그야말로 바리스타의 일상이다. 바리스타도 역시 그들의 일상 한 조각쯤 될 것이다. 손님이 잠시 머물다 가면 바리스타는 원두 출고 일이나 드립백을 만드는 일 따위를 잘 돕는다. 택배 출발 전까지 그날 약속된 커피를 모두 준비해야하는데 매일 아슬아슬하기 때문이다. 출고량은 많지 않지만 종류가 다양하고 분쇄 형태도 달라서 정신을 바짝 차려서 일해야 한다. 정해진 분업 시스템 따위는 없지만 분업이 잘 이루어진다.

택배 출고는 주로 온라인에서 원두나 추출에 필요한 물품 등을 구매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온라인이지만 오프라인 손님을 대하는 것과 크게 다른 것은 없다. 다른 점이라면 온라인샵 손님과의 소통은 내가 조금 더 활발히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랄까. 5년째 어김없이 원두나 드립백을 구매하며 구매할 때마다 문의게시판을 활용한 안부 메시지를 남기는 손님도 있다. 이 손님과의 인연은 럭키빈에 3가지 서로 다른 커피를 보낸다고 하고 왜 같은 콜롬비아 커피를 2개 보냈는지에 대한 약간의 클레임성 문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콜롬비아 커피였는데 지역도 완전히 다른데다가 하나는 워시드 커피였고 다른 하나는 내추럴 커피였다. 워시드 가공을 주로 하던 콜롬비아 커피. 지금처럼 콜롬비아 내추럴 커피가 흔하지는 않았기에 꼭 챙겨서 보내고 싶어서 그날 럭키빈에 넣었던 것이었다. 긴 휴직기를 지내고 있던 그 손님은 이제 복직했다. 나는 그 손님의 달라진 일상 이야기들을 짧지만 거의 거르지 않고 듣고 있다. 지금도 그 손님은 둔켈 블렌드를 즐기시는 친정어머니 위해 둔켈로 드립백을 만들어서 챙겨 가시곤 한다.

바리스타가 자신의 하루를 그냥 날려보내기가 아까울 때가 있다며 가벼운 글로라도 남겨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글의 시작을 나에게 부탁했다. 그게 벌써 일 년도 더 된 이야기다. 더 미룰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무슨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할지 잘 몰라서 고민되었다. 오늘은 너무 더워 로스팅을 더는 이어갈 수 없어 의자에 멍하니 앉아버렸다. 그리고 무작정 떠오르는대로 글을 쓴다.
이거면 되나?

바리스타 이젠 당신 차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