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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호텔은 없어서 숙소는 서너 군데 서로 이름이 다른 마을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아침은 숙소 근처 식당을 찾아가 먹었습니다.
처음 식당은 마지막 날 새벽에 들른 식당에 비하면 큰 편이었습니다. 안쪽으로 너른 공간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고 까만 주전자에 물이 끓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저렇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웠습니다. 커피는, 처음엔 기대감이 들지 않아 사양했다가 여기서 생산 것이라기에, 또 여기 사람들이 느긋하게 앉아 마시는 광경을 보고 마음이 바뀌어 한 잔 마셨습니다. 까맣고 진하고 약간 썼지만 단향이 풍부했고 무엇보다 촉감이 묵직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식당엔 무얼 선택하든 고기를 피하기 어려워보였는데, 마침 튀긴 생선 조각을 발견하고 흰 빵을 갈라 그것을 넣어 먹었습니다. 만두 종류도 몇 있고 샌드위치도 있고 흰 빵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고기 볶음이나 채소 볶음도 있었습니다. 고르는대로 음식값을 불러 주시면 그자리에서 돈을 내고 각자 좋은 자리에 앉아 먹습니다.
중간 하루는 아침을 걸렀고 마지막 날에는 농학을 전공하고 저널을 쓰는 일을 한다는 친구가 꼭 아침밥을 사주고 싶다기에 새벽 여섯 시에 만나서 함께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식당에는 친절하고 다정한 인상을 가진 아주머니와 딸로 보이는 젊은 여성,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음식은, 계란을 풀어 넣은 부침과 만두와 속에 고기가 들어간 전병 그리고, 삶은 계란인데 색이 짙고 여기서 귀하게 여긴다는 것 등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배가 고프지 않아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오니 동네는 벌써 다 깨어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따금 차량도 바삐 훅훅 시끄럽게 지나가는 걸 보며 일종의 출근 시간인 거로구나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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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마지막 날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아리산 깊은 산골로 향했습니다. 오래 전 아리산에는 편백 나무가 무성했지만 일제 강점기에 이곳 편백들이 모조리 일본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무차별적으로 베어져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는데 스무 그루가 안 되는, 높고 큰 편백이 무사했다고 합니다. 너무 귀하고 아름다워보였던지 그 덕에 살아 남았을거라고 아리산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커다란 편백 나무에는 번호가 붙어 있었는데 그날 우리는 하나만 볼 수 있었습니다. 전날 저녁부터 내린 비로 땅이 축축하고 미끄러워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목적지까지 오르는 길은 미리 전해들은대로 무척 가파르고 좁았습니다. 땅은 미끄럽고 가드레일 같은 구조물은 당연히 없고 길 아래는 절벽이거나 깊은 골짜기인데, 그 쪽을 안 보면 그만이었고 운전하는 이를 믿으면 혹은 운명을 믿으면 그만이기에 그리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쑥불쑥 나타나는 나뭇가지에 머리 부상을 당할 것이 걱정이라면 더 걱정이었습니다. 웃고 떠들고 사진을 찍다가도 일행 중 하나는 여전히 앞을 응시하고 있다가 장애물이 나타나면 조심하라 외치며, 모두 순발력 있게 머리를 숙여 피해야합니다. 평소에 사람들 발길이 닿는 길이 아니므로 종종 차량이 지나갈 수 없도록 길 중앙에 늘어진 나뭇가지를 만나는데 가뿐히 낫으로 가지를 툭툭 치고는 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관광객을 포함한 외부인 출입은 허락되지 않는 곳 빗장을 풀고 얼마 더 올라서 차량은 더이상 진입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부터는 걸어갑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Cou 어르신은 그들의 언어로 주문을 외며 가벼운 의식을 행했습니다. 우리가 이 산에 들어갈 때 이 숲이 우리를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소음을 내지 말으라 조언했습니다. 인간이 내는 소음에 짐승들은 놀라고 숲이 우리를 이방인으로 인식하게 될 거라고요. 당부가 끝나자 어르신은 산에 무언가를 뿌리며 우리의 안전한 산행과 귀가를 빌어주었습니다.
아리산 깊은 숲에 들어서자 새소리가 먼저 귀에 들어왔습니다. 맑고 깨끗한 소리였는데 그것이 꼭 “aveoveoyu”를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아리산에 처음 오던 날 Cou의 말을 하나 배웠습니다. “aveoveoyu”는, 안녕하세요를 대신하기도 감사합니다를 대신하기도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 이 말을 아주 많이 사용했습니다. 어렵고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aveoveoyu” 한 마디면 통할 것 같았습니다. 4000년 넘는 세월을 살아온 대만 초기 원주민들의 말소리,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말이 자연으로부터 오지 않았을까 짐작했던 물음에 답을 들은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물어보고 그 새 이름을 알았는데 번역하자면, 흰귀지빠귀인 것 같습니다.
베어 옮겨지지 않고 살아남은 편백나무 중 그 나무가 몇 번이었던지 기억나지 않지만, 커다란 나무에 다가가 만져보고 코도 대보았습니다. 다시 비가 내리고 땅 상태가 더 산행하긴 어려워 우리는 산을 내려와 다시 BoC 대회가 열리는 테르푸노 숲에 모였습니다. 오전 10시 경이었고 TOP 5 커피들을 다시 맛보기 위한 커핑과 이후 진행될 커피 경매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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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아리산 숲속 마을, 저희가 머문 곳입니다. 사진을 확대하면 운동장 달리기 트랙이 보이는데요. 아래쪽 끝 빨간 지붕 뒤편 보일 듯 안 보이는 지붕이 있어요. 그 집에서 묵었어요.

타이중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달리면 알리산 국립공원입니다. 목적지까지는 거기서부터 산길로 한 시간 남짓 더 올라가지요. 해발 800m 정도부터 차밭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더 높이 올라가면 게이샤 나무들과 고급 차를 생산하는 다원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길은 굴곡이 매우 많고 무척 가파릅니다. 스캇은 출발 전부 터 멀미 걱정을 합니다. 우리는 멀미 안 하니 걱정 말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그 후로도 몇 번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원래 조금 더 나은 길이 있는데 태풍으로 도로 유실이 심해 복구하기까지 한두 해는 걸리나봅니다. 그동안은 구도로를 이용해야 하죠. 구도로는 좁고 험한 데다가 시간도 40분 정도 더 걸립니다. 스캇은 이 길을 몇 해 동안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다녔습니다. BOC를 목전에 두고선 매주 다녔습니다. 스캇이 무얼 하고자 하는지 어떻게 조직해나가고 있는지, 얼마나 정교한지, 결과는 어떨지 어느 것 하나 명확한 것이 없었지만, 함께 할 이유, 마음 혹은 의지는 훨씬 명확했으므로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Cou가 무엇을 뜻하는지 물었을 때 스캇은 ”Cou라는 말은 대만 원주민을 이르는 말이지만 사실 그들의 언어로는 그 자체로 “사람”을 뜻해. Cou는 사람이고 나아가 곧 우주야“ 라고 답했습니다. 아리산 깊은 산골 Cou족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저희는 사흘 간 머물며 함께 밥을 먹고 숨쉬고 길을 걸었습니다. 짧은 일정으로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 그들의 생각과 정서를 당연히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죠. 그저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마치 대상을 바라보고 듣고 만지며, 짐작하는 것처럼.

송도커피가 한국에 대만 토착민 Cou 사람들의 커피를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입니다. 지나온 시간과 여정들이 엮어주고 가져다 준 기쁨이에요.

이곳 커피는 따뜻한 봄날 여러분께 소개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사진을 꺼내 이야기도 들려 드릴게요. 걱정들 많아도 삶은 여전히 풍요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야기도 조금씩 꺼내보고 커피도 맛있게 만들거에요.
2025, 3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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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호텔은 없어서 숙소는 서너 군데 서로 이름이 다른 마을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아침은 숙소 근처 식당을 찾아가 먹었습니다.
처음 식당은 마지막 날 새벽에 들른 식당에 비하면 큰 편이었습니다. 안쪽으로 너른 공간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고 까만 주전자에 물이 끓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저렇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웠습니다. 커피는, 처음엔 기대감이 들지 않아 사양했다가 여기서 생산 것이라기에, 또 여기 사람들이 느긋하게 앉아 마시는 광경을 보고 마음이 바뀌어 한 잔 마셨습니다. 까맣고 진하고 약간 썼지만 단향이 풍부했고 무엇보다 촉감이 묵직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식당엔 무얼 선택하든 고기를 피하기 어려워보였는데, 마침 튀긴 생선 조각을 발견하고 흰 빵을 갈라 그것을 넣어 먹었습니다. 만두 종류도 몇 있고 샌드위치도 있고 흰 빵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고기 볶음이나 채소 볶음도 있었습니다. 고르는대로 음식값을 불러 주시면 그자리에서 돈을 내고 각자 좋은 자리에 앉아 먹습니다.
중간 하루는 아침을 걸렀고 마지막 날에는 농학을 전공하고 저널을 쓰는 일을 한다는 친구가 꼭 아침밥을 사주고 싶다기에 새벽 여섯 시에 만나서 함께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식당에는 친절하고 다정한 인상을 가진 아주머니와 딸로 보이는 젊은 여성,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음식은, 계란을 풀어 넣은 부침과 만두와 속에 고기가 들어간 전병 그리고, 삶은 계란인데 색이 짙고 여기서 귀하게 여긴다는 것 등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배가 고프지 않아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오니 동네는 벌써 다 깨어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따금 차량도 바삐 훅훅 시끄럽게 지나가는 걸 보며 일종의 출근 시간인 거로구나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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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마지막 날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아리산 깊은 산골로 향했습니다. 오래 전 아리산에는 편백 나무가 무성했지만 일제 강점기에 이곳 편백들이 모조리 일본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무차별적으로 베어져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는데 스무 그루가 안 되는, 높고 큰 편백이 무사했다고 합니다. 너무 귀하고 아름다워보였던지 그 덕에 살아 남았을거라고 아리산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커다란 편백 나무에는 번호가 붙어 있었는데 그날 우리는 하나만 볼 수 있었습니다. 전날 저녁부터 내린 비로 땅이 축축하고 미끄러워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목적지까지 오르는 길은 미리 전해들은대로 무척 가파르고 좁았습니다. 땅은 미끄럽고 가드레일 같은 구조물은 당연히 없고 길 아래는 절벽이거나 깊은 골짜기인데, 그 쪽을 안 보면 그만이었고 운전하는 이를 믿으면 혹은 운명을 믿으면 그만이기에 그리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쑥불쑥 나타나는 나뭇가지에 머리 부상을 당할 것이 걱정이라면 더 걱정이었습니다. 웃고 떠들고 사진을 찍다가도 일행 중 하나는 여전히 앞을 응시하고 있다가 장애물이 나타나면 조심하라 외치며, 모두 순발력 있게 머리를 숙여 피해야합니다. 평소에 사람들 발길이 닿는 길이 아니므로 종종 차량이 지나갈 수 없도록 길 중앙에 늘어진 나뭇가지를 만나는데 가뿐히 낫으로 가지를 툭툭 치고는 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관광객을 포함한 외부인 출입은 허락되지 않는 곳 빗장을 풀고 얼마 더 올라서 차량은 더이상 진입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부터는 걸어갑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Cou 어르신은 그들의 언어로 주문을 외며 가벼운 의식을 행했습니다. 우리가 이 산에 들어갈 때 이 숲이 우리를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소음을 내지 말으라 조언했습니다. 인간이 내는 소음에 짐승들은 놀라고 숲이 우리를 이방인으로 인식하게 될 거라고요. 당부가 끝나자 어르신은 산에 무언가를 뿌리며 우리의 안전한 산행과 귀가를 빌어주었습니다.
아리산 깊은 숲에 들어서자 새소리가 먼저 귀에 들어왔습니다. 맑고 깨끗한 소리였는데 그것이 꼭 “aveoveoyu”를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아리산에 처음 오던 날 Cou의 말을 하나 배웠습니다. “aveoveoyu”는, 안녕하세요를 대신하기도 감사합니다를 대신하기도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 이 말을 아주 많이 사용했습니다. 어렵고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aveoveoyu” 한 마디면 통할 것 같았습니다. 4000년 넘는 세월을 살아온 대만 초기 원주민들의 말소리,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말이 자연으로부터 오지 않았을까 짐작했던 물음에 답을 들은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물어보고 그 새 이름을 알았는데 번역하자면, 흰귀지빠귀인 것 같습니다.
베어 옮겨지지 않고 살아남은 편백나무 중 그 나무가 몇 번이었던지 기억나지 않지만, 커다란 나무에 다가가 만져보고 코도 대보았습니다. 다시 비가 내리고 땅 상태가 더 산행하긴 어려워 우리는 산을 내려와 다시 BoC 대회가 열리는 테르푸노 숲에 모였습니다. 오전 10시 경이었고 TOP 5 커피들을 다시 맛보기 위한 커핑과 이후 진행될 커피 경매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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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아리산 숲속 마을, 저희가 머문 곳입니다. 사진을 확대하면 운동장 달리기 트랙이 보이는데요. 아래쪽 끝 빨간 지붕 뒤편 보일 듯 안 보이는 지붕이 있어요. 그 집에서 묵었어요.
타이중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달리면 알리산 국립공원입니다. 목적지까지는 거기서부터 산길로 한 시간 남짓 더 올라가지요. 해발 800m 정도부터 차밭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더 높이 올라가면 게이샤 나무들과 고급 차를 생산하는 다원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길은 굴곡이 매우 많고 무척 가파릅니다. 스캇은 출발 전부 터 멀미 걱정을 합니다. 우리는 멀미 안 하니 걱정 말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그 후로도 몇 번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원래 조금 더 나은 길이 있는데 태풍으로 도로 유실이 심해 복구하기까지 한두 해는 걸리나봅니다. 그동안은 구도로를 이용해야 하죠. 구도로는 좁고 험한 데다가 시간도 40분 정도 더 걸립니다. 스캇은 이 길을 몇 해 동안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다녔습니다. BOC를 목전에 두고선 매주 다녔습니다. 스캇이 무얼 하고자 하는지 어떻게 조직해나가고 있는지, 얼마나 정교한지, 결과는 어떨지 어느 것 하나 명확한 것이 없었지만, 함께 할 이유, 마음 혹은 의지는 훨씬 명확했으므로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Cou가 무엇을 뜻하는지 물었을 때 스캇은 ”Cou라는 말은 대만 원주민을 이르는 말이지만 사실 그들의 언어로는 그 자체로 “사람”을 뜻해. Cou는 사람이고 나아가 곧 우주야“ 라고 답했습니다. 아리산 깊은 산골 Cou족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저희는 사흘 간 머물며 함께 밥을 먹고 숨쉬고 길을 걸었습니다. 짧은 일정으로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 그들의 생각과 정서를 당연히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죠. 그저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마치 대상을 바라보고 듣고 만지며, 짐작하는 것처럼.
송도커피가 한국에 대만 토착민 Cou 사람들의 커피를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입니다. 지나온 시간과 여정들이 엮어주고 가져다 준 기쁨이에요.
이곳 커피는 따뜻한 봄날 여러분께 소개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사진을 꺼내 이야기도 들려 드릴게요. 걱정들 많아도 삶은 여전히 풍요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야기도 조금씩 꺼내보고 커피도 맛있게 만들거에요.
2025, 3월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