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매홍손> 짧은 기록

Roas****
20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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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홍손은 태국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동편으로 라오스, 서편으로 미얀마 국경과 접해 있다. 내가 머문 곳은 멀리 미얀마 땅이 보이는 곳으로 매홍손에서 미얀마로 넘어가는 끝자락 쯤 된다. 수도인 방콕, 아기자기한 관광지 느낌의 치앙마이와는 다른 느낌을 주는 매홍손.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꽤 오래 여운을 남긴다. 높고 깊은 산 속 마을, 조용히 쏟아지던 폭포. 서늘한 공기와 안개, 잔잔하게 웃던 사람들.



치앙마이에서 매홍손까지는 400킬로미터 조금 안 되는 길이다. 길은 좁고 가파르다. 천 오백 개가 넘는다는 꼬불꼬불 고갯길이다. 매홍손 가는 길에는 사고도 많다. 나도 두어 번 전복된 차량을 봤다. 밤에는 사고가 더 잦다고 하는데 대부분 버팔로나 코끼리를 피하려다 차가 넘어가며 생기는 사고라고 한다. 낮에도 버팔로 대 여섯 마리가 무리 지어 도로를 건너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매홍손에 다다랐을 때 높고 웅장한 산세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골짜기는 깊고 아름다웠다. 산마루 곳곳에는 야생 해바라기 몇 포기가 노랗게 남아 있고, 거뭇한 씨를 품고 있기도 했다. 나는 꽃 모양을 보고 구절초를 떠올렸다. 색은 구절초와 달리 온통 노랗다. 12월 초순 쯤 이곳은 온 산이 노란 꽃으로 뒤덮여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는데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져 무척 붐빈다고 한다. 


마침 근처 커피 농장을 방문했을 때, 내 눈에는 커피 나무들에 관리가 더 필요해 보였다. 이 커피 농장에 투자 중인 회사에서 나온 관리인에게 그 이유를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이곳 농부들이 커피 농사 외에 생업으로 하고 있는 일이 많아 커피 관리에 소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커피 재배 외에도 옥수수 등 다른 작물 재배에도 신경 써야 했다. 특히 12월 전후로는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 찾아오므로 커피 농사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커피 품질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생계는 더 기본적인 문제이므로 뭐라고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잠깐 고민하고 말 뿐이다.



매홍손 마을엔 대나무집들이 많다. 기둥과 서까래는 주로 통나무나 각목을 쓴다. 벽은 합판이나 대나무로 둘러쳤고 바닥에는 거의 대나무를 깐다. 지붕에는 대개 대나무나 슬레이트를 올렸다. 내가 묵은 곳은 커피 농장에 딸린 작은 숙소였는데 역시 그렇게 지어졌다. 대나무가 서로 맞붙은 곳에 틈으로 저녁이면 붉은 석양이 비쳐 들어왔다. 낮엔 그 사이로 바람도 분다. 곤충들도 그리로 날아 들어왔다 나가는 것 같았다. 밤에는 제법 싸늘했다. 내가 누운 자리가 방 안인지 밖인지, 안팎의 경계가 모호했다.



식사는 주로 농장에서 해결했다. 농부 부부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를 키우고 있었다. 그들은 원래 미얀마인이다. 오래 전 미얀마에서 총성을 피해 국경을 넘어왔다는 가족사를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슬링 형태의 아기띠로 아기를 돌보는 동안 주방에서식사가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국수와 쌀밥이 기본이다. 밥이나 국수에 다양한 요리를 끼얹어 먹는다. 국수는 튀겨 먹기도 했다. 하얗고 통통하게 튀겨나온 국수를 똠얌꿍이나 카레에 넣어 먹었다. 모든 요리에는 맛에 저마다의 특징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트러스한 산미와 은근한 단맛, 짭쪼름한 간, 스파이시하거나 신선한 느낌을 주는 향신료의 향미가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훌륭한 솜씨와 정성으로 차려 주신 음식들은 모두 맛이 좋았다. 어떤 면에서는 이름난 태국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그것보다 더 맛있게 먹은 식사로 기억한다. 



매홍손은 태국에서도 북쪽에 위치하고있고 고도 또한 높아 기후가 서늘한 편이다. 12월 말 이곳은 아침 저녁으로 모닥불을 피운다.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뗄감 중에서 기름진 나무는 따로 모아두는데, 불을 피울 때 그 나무를 칼로 가늘게 몇 조각 베어내어 불쏘시개로 썼다. 은은히 풍기는 향이 소나무를 닮았다. 그렇게 붙인 밑불 위로 둥그렇게 돌려가며 나무 대여섯 개를 층층이 올리면 불은 이내 매운 연기를 내며 타올랐다. 그리고 일부러 꺼 둬야할 정도로 오래 따뜻했다. 우리 일행은 그 곳에 머무는 동안 그 모닥불 근처에 모여서 밥도 먹고 커피도 내려 마셨다. 바람이 연기를 품고 불어오면 눈이 매워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두어 시간 앉았다 잠자리에 들면 온몸엔 연기 냄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에서 옷에서, 이불에서도 연기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순식간에 낯섦과 새로움을 일으키고 약간의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 여행가방을 풀며 나는 그 냄새를 한번 더 맡을 수 있었다. 그 냄새를 쫓으며, 냄새는 기억의 영역임이 분명하구나 생각했다.



매홍손이 남긴 여운 속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얼굴이 있다. 나는 그들의 미소가 무척 좋았다. 환한 미소로 잔잔하게 말을 건네는 그곳 사람들이 정답게 느껴졌다. 그들의 말소리도 듣기 좋았다. 나는 한참을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 있곤 했는데, 그것은 높고 낮음이 분명히 있지만 특정 음역이 도드라지지 않은 소리였다. 높아지다 내려오고 다시 높아질 듯하다 평평하게 이어지는 소리들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곧 잠이 스스륵 들 것만 같았다.




높고 깊은 산 속 마을, 매홍손. 골짜기에서 조용히 쏟아지던 폭포. 서늘한 공기와 안개, 노을. 잔잔하게 웃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게 따뜻하고 환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