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하여 _송도커피 겨울 블렌드



<송도커피, 시즈널 블렌드>


겨울,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하여

For those who miss their father in winter



지난 8월부터 '시지프를 위하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두었던 가을 블렌드는 모두 세 가지다. 그 중 나는 아무 것도 고르지 못했다. 완성됐구나 싶다가도 다시 먹어보면 아쉬움이 들어서 내 놓기가 싫었다. 올해는 깨끗이 포기했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했던 일은 지나온 삶을 통틀어 가장 힘들고 아픈 일이었다. 그 때 이후로 겨울이면 나는 자주 아픔을 느낀다. 나는 이 통증을 반드시 떨쳐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보내 드리며 어느 절에서 제를 올렸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가족들이 제를 올리고 싶어하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뭐든 의식적인 것을 더 해서라도 아버지를 보내는 일을 늦추고 싶었던 것 같다.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 제를 올리던 날 나는 시를 적어 스님께 드렸다. 이수익 시인의 '결빙의 아버지'라는 시였다. 문학성을 논할 필요없이 당시 나에게 그 시는 절실했다. 나는 '결빙의 아버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때 나는 마음에서 슬픔이 돌처럼 굳은 것 같았고 울음조차 쉽지 않았다. 제를 올리던 중 마지막 순서쯤 되었을 때였다. 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에 노잣돈도 올려 드리며 계속 절을 했는데 그때 스님은 내가 올린 시를 염불하시듯 읊어 주셨다. 그때 스님이 그렇게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스님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로 시를 끝까지 노래해 주셨다. 그때 나도 눈물을 많이 쏟아내었다. 울음의 물꼬가 터지니 오히려 시원했다. 정신을 잃을 듯 울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다. 그러고도 나는 삼 년을 더 아픔 속에 지냈다. 절절히 앓았다. 겨울은 끝나지 않을 듯했다. 부끄럽지만 그때 나는 겉 멀쩡한 어른이었다.


지금은 그때와 같지 않다. 나는 그때처럼 방황하지 않는다. 아픔을 다른 것으로 덮어 버리거나 애써 잊으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겨울이면 나는 아직 문득 문득 아픔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의 아픔은 내게 방황을 가져오기보다 내 삶을 살아갈 의지를 일으키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느낀다. 극복한 것일까. 아니 매일 새롭게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어려움이 있을 때 나는 외부에서 위로를 구하는 편이 아니다. 외부에서 구한 위로는 진 통제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약해지고 병은 깊어지는 듯했다.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방법을 스스로 찾는 쪽이 나와 잘 맞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시를 읽거나 잠을 자거나, 뭐든 새로 의지를 낼 수 있도록 충전이 될 만한 일을 주로 한다. 커피도 한 몫을 한다. 향기롭고 깨끗한 커피를 마시는 일은 휴식이 된다. 그런 커피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의지를 세워준다.


올해는 포기한 가을 블렌드 <시지프를 위하여>를 내년으로 넘기고 겨울 블렌드를 만들었다. 블렌드 이름은 <사망부가>, 부제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하여>다. <사망부가>는 정태춘 씨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사실 이 노래를 줄곧 들으며 만든 커피다. 이번 블렌드는 커핑 노트를 따로 제시하지않는다. 향미 표현 몇 개로 정리해버리고 싶지 않다. 꼭 그것을 몇 개의 단어로 적지 않아도 이 커피를 마실 이들과 내가 공감하는 맛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송도커피의 겨울 블렌드, <사망부가>

겨울,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하여


다시 오는 새해를 살아갈 의지를 만들어줄 커피가 되었으면 한다.




[커피 정보 참고]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커피로 블렌드하여 미디움 다크에 가깝게 로스트.

로스팅 후 3일 이내의 원두로 보내 드립니다.

너무 높지 않은 온도로 추출 추천합니다.

진득한 단맛에 꽃과 과일의 향을 은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2. 정태춘 <사망부가>





3.


결빙의 아버지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 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 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랭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 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 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의 영하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 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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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익 저, 불과 얼음의 콘서트, 나남(2002)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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